가요

7080가수 - 민해경

부산 성광 오디오 2012. 12. 9. 22:38





민해경(본명:백미경)은~

서산출신의 직업군인인 아버지 백남웅씨와

역시 서산출신의 어머니 유명주씨 사이에 3남2녀중 넷째로

직업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대구에서 1962년 태어난다

 

첫째인 오빠는 민해경의 매니저를 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딸을 잃고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는 목사겸 할렐루야 그린골프장 단장인 백성기

둘째인 오빠는 김종서 부활 탈퇴와 이승철 빰사건으로 유명한?

                    기획자이자 부활의 전 메니저인 백강기

세째인 언니는 미쎄스비비란 예명을 쓰고있는

                    30년만에 가수의 꿈을 이룬 인천빅마마로 통하는 백춘자(민재경)

다섯째인 막내 남동생은 신예찬이란 예명을 쓰는 록싱어로

                    한때 김태원,신대철과 함께 음악활동을 하였으며

                    특히 민해경의 14집앨범을 김태원과 함께 프로듀싱한 백경기

 

                <백성기>                              <백강기>                             <백춘자>


어린시절 직업군인인 아버지로 인해 무섭고 엄한 가정에서 자랐으며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해 가야금과 고전무용을 배우며 자란다

하지만 민해경은 어린시절  별명이 "여우" "깍쟁이"가 말해주듯

내성적이고 결벽적인 성격때문에 남과 어울리지 못하고 항상 혼자였다고 한다

 

1974년 2월 구로남초등학교를 졸업한다

          (참고로 드라마 <넝굴째 굴러온 당신>의 둘째며느리 나영희와 동창이다)

1977년 2월 대방여중을 졸업하게 된다

          3월 국립 국악학교에 지원했다 낙방하고 2차로 국악예고에 진학한다

1978년 곽규석이 사회를 보는 전국노래자랑에 출전하여 2번의 예선을

          좋은성적으로 통과하나 나이를 속인것이 들통나 본선에 오르지 못한다

          당시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사업에 투자를 하였다가 사기를 당하게 된다

          이미 기울어진 가세에 아버지 마저 퇴역을 하게되자 가정형편은 더 어렵게 된다

          한때 가수였던 아는 언니가 청계천의 극장식당 아마존에 가보란 말을 듣고

          민해경은 무작정 <아마존>에 찾아가서 노래를 부르게 해달라고 졸랐다고 한다

          처음엔 나이가 적다고 쫓겨났으나 이후 연애부장의 도움으로 오디션을 통과

          당시 적지않은 월3만원을 받고 고2의 나이에 밤무대 가수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후 민해경은 밤무대에서 인기가 오르고 소문이 나자 <무랑루즈><월드컵>

          <초원의 집>등 7~8군데의 밤업소에 출연을 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된다

 


1980년 2월 국악예고를 졸업한다

           드디어 청계천의 <아마존 극장식클럽>에서 한단계 올라 2부에서

            "곡예사의 첫사랑"을 부른 가수 박경애의 보조가수로 활동하게 된다

           이때 만난 박경애의 소개로 매니저 이명순을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어

           이후 민해경은 밤무대 생활을 청산하고 본격적으로 노래공부를 시작한다

           6월10일 데뷔앨범에서 "누구의 노래일까"를 부르며 정식으로 가수가 된다 

           이후 "어느 소녀의 사랑이야기"가 연이어 히트를 하면서

           음반 발표후 3달만인 그해 TBC 방송국의 신인가수왕을 차지한다

1981년 9월 2집앨범에서 "어느소녀의 사랑이야기" "그언제 오려나"를 발표

1982년 9월 3집앨범에서 "서기2000년" "깊어지리라" "슬픈약속"을 발표

           김현준과 함께부른 듀엣곡 "내인생은 나의것"을 부르며

           <가요톱10>에서 4주연속 1위를 차지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끈다

           하지만 얼마후 청소년에게 반발감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된다

1983년 LA가요제에서 이범희 작곡의 "인생은 나그네"를 불러 대상을 수상한다

          3월 12회[동경가요제]에 출전한다

                (참고로 이대회에서 송골매는 "모두다 사랑하리"를 불러 심사위원상을

                 그리고 2003년 자궁경부암으로 사망한 배우 매염방이 특별상을 수상한다

          7월 4집앨범에서 "변명" "고교생일기" "그대와 피아노"를 발표 

          11월 당시 [요정출입 연예인 명단사건]으로 파문이 일자

                민해경,금보라등은 "자신은 결백하다"며 문공부등에 탄원서를 제출한다

                하지만 자신의 결백은 밝혀지지 않은채 가수 활동을 중단해야 했던

                민해경은 그 충격으로 식음을 전폐하게 되었고 매일 술로 의지하던

                그녀는 급기야 술에 취한 상태에서 2번의 자살미수 소동을 벌이게 된다

 


1984년1월 사회정화차원이나 대마초 요정출입등 불미스러운 사생활로 

                방송출연이 금지되었던 심수봉,태진아,장미희,원미경,민해경,김수희

                주병진,계은숙,이정희,홍세미,이기동등 20여명의 활동이 전면 해제된다 

                하지만 더이상 설자리가 없게되자 다시 노래를 할수있는 방법을 모색하다

                84년 봄 민해경은 단돈 7만엔을 움켜쥔채 홀로 일본으로 출국하게 된다

          4월 13회 [동경가요제]에 출전하여 "내곁에 있어주"를 불러 틀별상을 수상한다

                 (참고로 이대회 우승은 "Gloria"를 불러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로라 브래디건이 "The Lucky one"을 불러 그랑프리를 받게된다)

1985년 일본에 도착한지 10여개월만인 85년초 민해경은 김정수의

          "내마음 당신곁으로"를 리메이크하고 "사랑은 이제 그만"을 발표하는등

          일본에서 2년여동안 총6장의 싱글앨범을 발표하며 성공적인 활동을 한다

          6월 민해경은 이선희의 "J에게"를 팝송스탈일로 바꾼 "J"라는 도너츠앨범을

                발표하여 시판 1개월만에 3만장이 팔리면서 일본에서 큰인기를 얻게된다

           (참고로 당시 조용필,계은숙,김수희,나훈아,이미자등이 일본 대형 레코드사와

            계약하면서 일본내 한국 가수들의 활약으로 한국 가요붐이 고조되고 있었다) 

1986년 1월 일본에서 귀국한후 5집앨범에서 "사랑은 이제 그만" "이젠 안녕"을 발표

          10월 6집앨범에서 "겨울 해바라기" "내인생을 찾아서"를 발표

                 일본에서 귀국후 "사랑은 이제그만"으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린 민혜경은

                그해인 86년부터 91년까지 내리 6년 연속 골든 디스크상을 수상하게 된다

1987년 4월 7집앨범에서 "그대는 인형처럼 웃고 있지만" "성숙"을 발표

               "그대는 인형처럼 웃고 있지만"은 <가요톱10>에서 2주연속 1위를 차지한다

 


1988년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민해경이

           처음으로 결혼까지 생각한 남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국내 굴지의 S그룹의 식구였으며 그의 자상함에 반해 결혼을 결심했으나

           양가 부모의 반대 특히 남자의  어머니가 "못 올라갈 나무는 쳐다보지 말라"는

           말에 충격을 받은 민해경은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 그와 헤어지게 된다

           12월 "그대 모습은 장미"등이 대히트를 하며 최고의 한해를 보냈던 민해경이

                <88 MBC가요대전>에서 10대가수에 탈락하고 베스트드레서 수상자로

                선정되자 민해경은 "가수는 노래로 평가를 받아야지 의상으로 평가~"라며

             또한 방송사의 평가를 납득할수 없다며 수상을 거부 방송에 출연하지 않는다

             이에 MBC는 <가요대제전>수상을 거부한 민해경에게 출연제재조치를 내린다

1989년 3월 8집앨범에서 "존대말을 써야할지 반말을 해야할지" "약속은 바람처럼" 발표

              하며 런던,파리,뒤셀 도르프,프랑크프르트등 보름간 유럽 순회공연을 갖는다

           12월 "국악예고시절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하루 10여차례나 밤무대에 서면서

                    학비를 벌고 집안살림을 꾸렸다 이젠 이웃을 돕는 일을 하겠다"며

                    데뷔 10년차를 맞은 민해경은 <민해경 장학재단>을 설립하게 된다

           5월 뉴욕, LA, 시카고등 미국 10개도시 순회공연을 갖는다

1990년 1월 10집앨범에서 "보고싶은 얼굴"을 발표한다

           9월 말레지아에서 열린 제3회 ABU 가요제에 참가번호 10번으로 출전하여

           이주호가 만든 "보고 싶은 얼굴"로 대상을 수상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다

           (참고로 구창모,정수라 듀엣이 최우수작곡상을 이지연이 특별상을 수상한다)

          12월 "보고싶은 얼굴"이 MTV에서 7주 연속 1위를 차지한다

                 또한 음반 판매량 박스차트1위, DJ친목회 차트1위등을 하며 

                 2달여 동안 가요 전차트를 석권하며 민해경 독주시대를 연다

 

          

1991년 3월 힐튼호텔에서 민중당 기금마련 공연을 열어 수익금 전액을 기부한다

           민해경은 "민중당이 여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것 같아

           큰 감동을 받아서 이와같은 공연을 흔쾌히 수락했다"고 말했다

1992년 8월 12집앨범에서 "어제와 같은 사랑"을 발표한다

           뚜렷한 히트곡은 없지만 신해철,윤상,손무현,오태호등

           당대 최고수들과 함께 만든 작품으로 이루워진 LP이다

1995년 뮤지컬 <광개토대왕>에서 말갈공주역을 맡고있던 민해경이

           지금의 남편인 이인수씨가 운영하던 방배동의 모카페에 

           차를 마시러 갔다가 마침 민해경이 수중에 돈이 없어 외상을 하게 되었고

           이게 인연이 되어 둘의 좋은 만남은 이어지게 된다

1996년 9월16일 민해경의 약혼자인 이인수씨가

               결혼식을 한달여 앞두고 대마초를 상습적으로 핀 혐의로 구속된다 

           10월 3일 결혼을 이틀 앞두고 이인수씨가 불구속으로 풀려난다

           10월 5일 이에 주변사람들은 극심하게 결혼을 반대하였고

                        그의 결혼식에는 일가친척이 단 한명도 참석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임신6개월이었던 민해경은 용산미8군 영내예식장

                        드래건 힐 호텔에서 남편 이인수씨와 결혼을 강행하게 된다

 


2002년 8월 16집앨범에서 "Rose" "다시 여자가" "동화의 끝처럼" 발표

   ("다시 여자가"는 김수현 작가의 KBS 드라마 <내사랑 누굴일까>에 OST로 삽입된다)

2007년 4월 MBC "쇼! 음악중심"에서 아이비와 함께 조인트 무대를 꾸민다

          

가족관계로는

현재 무역회사와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는 남편인 이인수씨(45)와

중학교3학년에 재학중인 딸 이유빈양(15)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