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

김현식

부산 성광 오디오 2012. 12. 10. 00:28



김현식은 1958년 1월 7일 서울 인현동에서

간장공장을 하던 부친과 모친 윤진희씨의 2남1녀 중 둘째로 태어난다

 

충남 홍성에서 알아주는 유지였던 할아버지와

충북 옥천에서 영국 옥스포드 대학으로 유학까지 다녀온 영문학자 출신의 외할아버지

그리고 당시 사업가로 어느정도 성공을 거두었던 아버지등

그의 어린시절은 부유하고 풍요로운 집안 환경에서 자란다

하지만 아버지가 서울에서 사업관계로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

여러번의 잦은 전학등으로 인하여 항상 외로움을 느끼며 어린시절을 보낸다

 

1964년 서울 혜화초등학교에 입학한후 외가가 있는 충북 옥천의 죽향초등학교

           그리고  다시 서울 삼청초등학교를 거쳐 수유초등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1970년 전교4등이라는 뛰어난 성적으로 보성중학교에 입학한다

           보성중에 입학하고 정릉에 있는 큰아버지댁에서 머물게 되는데

           홍익공대 밴드에서 베이스를 치며 음악 활동을 하던 사촌형 양국정에게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며 또한 보성중 아이스하키부에서도 활동을 한다

           그러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고 집안이 어려워지자

           다른학교 학생들과 패싸움을 하고 다니는 등  방황을 하게된다

1973년 경기고에 지원하나 낙방하게 되고 단지 밴드부가 유명하단 이유만으로

           후기인 명지고등학교에 전교3등으로 입학하게 된다

           (당시 서울지역 고교 평준화는 74년도 고등학교 입학생부터~)

           명지고에 입학후 밴드부 들어 갔으나 밴드부 선배와 주먹다짐을 벌인후

           밴드부를 탈퇴하고 1학년을 마치기도 전에 자퇴를 하고 학교를 그만둔다

1974년 종로 제일검정고시학원을 다녀 75년에 검정고시에 합격하게 되나

           그때는 이미 학업에 흥미를 잃고 통기타만 치며 가수의 꿈을 키우게 된다

1975년 "벌판"이라는 작은 업소의 오디션에 참가해 노래를 시작한 김현식은

           명동의 "셀부르" "썸씽"등 큰 무대로 나가 무명가수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1976년 가수 이장희의 동생인 이승희와 한 호텔의 나이트 클럽에서 

          가수와 가수들의 무대를 잇는 들러리 역할로 듀엣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승희와 결별한 후에는 "묻어버린 아픔"을 부른 김동환과 듀엣으로 활동한다

          그해 김현식의 노래실력을 눈여겨 보던 가수 이장희의 제안으로

          사직동 아이템풀 학원 지하 연습실에서 이장희와 음반 제작에 들어간다

1978년 이장희가 사업부도로 미국으로 도피하여 장기체류하게 되고

           더욱이 무대뒤에서 잠깐 핀 대마초가 발단이 되어 8개월간 구속된다

           그로인해 녹음을 마치고 음반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던 김현식은  

           2년후인 80년 정식앨범이 나올때까지 정식 가수데뷔를 미루게 된다

1980년 서라벌 레코드사에서 '봄여름가을겨울'을 타이틀곡으로 1집 앨범을 발표한다

           그가 안장된 성남의 공원 묘지의 노래비에 새겨져 있는 노랫말이

           바로 김현식이 가장 좋아했던 자작곡 "당신의 모습"이 바로 1집 수록곡이다

           "당신의 모습" 이 곡은 경기고에 낙방하고 방황하던 시절에 만난

            2살 연상인 김현식 첫사랑 그녀(숙명여고 그리고 연대 철학과)와

            헤어지고 난후 그녀를 잊지 못한 그리움으로 20살때 만든 자작곡 이다

1982년 당시 이대앞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던 부인 김경자씨와 만나

           명동의 YMCA회관에서 결혼을 하고

           그해 12월 현재 가수로 활동중인 아들 김완제군이 태어난다

 

   

1983년 결혼후 경제적 어려움이 지속되자 동부이촌동에서 부인과 함께

           피자집을 1년동안 운영하게 되는데 그때 그시절을 생전 김현식은~ 

           그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종종 말하곤 했다고 한다

1984년 동아기획에 스카우트되어 그해 9월 2집앨범에서

           "사랑했어요" "어둠 그 별빛" "회상" "바람인줄 알았는데" 를 발표

           노래가 발표되자 방송보다는 다방등 다운타운에서 반응이 나타난다

1985년 김종진,전태관,유재하,장기호,박성식등 5명은 김현식과 함께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이란 그룹을 결성하게 되는데

           유재하만은 앨범 제작전에 탈퇴하게 되고 김현식은 나머지 멤버와 함께

           다음해인 86년에 3집앨범인 "비처럼 음악처럼"을 발표하게 된다

1986년 12월 3집앨범에서 "비처럼 음악처럼" "가리워진 길" "빗속의 연가"를 발표한다

           (이 앨범은 명반 베스트 14위에 올라갈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음반이다)

           3집앨범의 성공과 함께 김현식의 인기는 끝을 모르게 올라 갔으나

           친구,후배 그리고 술과 여자에 빠져있던 그는 점점 더 가정을 멀리하게 되고

           급기야 그해 부인과 이혼을 하게 되고 사랑하던 아들과도 헤어지게 된다

1987년 10월 어머니의 신고로 김현식은 마약 혐의로 구속되어

           전인권, 허성욱과 함께 마약복용 혐의로 유치장에 들어가게 된다

           그를 무척이나 아꼈던 김영사장이 선처를 호소한끝에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그러나 김현식이 교도소에 있던 그해 11월1일 그토록 아꼈던 후배가수

           유재하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되고 난후 대마초와  유재하를 잊기위해

           그는 몇날 몇일을 술만 마시고 나중엔 점점 알콜 중독에 빠지게 된다

           이무렵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의 멤바였던 장기호와 박성식은 팀을 떠나

           한경훈과 함께 <빛과 소금>을 결성하게 되고 김종진과 전태관 마저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을 떠나 <봄여름가을겨울>을 결성하게 된다

1988년 2월 팬들에게 사죄하는 심정으로 삭발을 한채 63빌딩에서

          재기 콘서트를 갖게 되는데 6000여명이 몰리는 대성황으로 재기에 성공한다

 


1989년 신촌블루스 2집앨범에 참여하여 "골목길" "바람인가, 빗속에서" "환상"을 부른다

           그해 5월 4집앨범에서 "언제나 그대 내곁에"와 하모니카 연주곡인

           "한국사람"을 내놓았으나 종전의 2,3집처럼 히트곡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예전과는 다른 탁성으로 변한 김현식의 목소리는

           종전의 그의 노래소리보다 더욱 듣는이의 가슴을 적셔주게 된다

           11월 강인원,권인하와 함께 영화 <비오는날의 수채화> 사운드트랙에 참여한다

1990년 3월 생전 마지막 앨범인 5집앨범에서 "넋두리" "향기없는 꽃"을 발표한다

           또한 신촌블루스 3집앨범에서 "이별의 종착역"을 부르며 동시에 발표한다

           그러나 밤샘 녹음 폭음 줄담배등으로 치명적인 건강 악화를 불러오게 된다

           건강이 악화된 와중에도 <사랑과 평화>의 최이철, 김명수와 함께

           6집앨범 녹음에 들어갔으나 11월1일 자택에서 간경화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1991년  병원에서 탈출해서 녹음한 곡들이 사망으로 미완으로 남게되자

           생전 그와 함께했던 김현식의 동료,후배들이 완성시킨 6집앨범에서~

           "내사랑 내곁에" "추억만들기" "사랑 사랑 사랑"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 6집앨범은 백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게되며

         "내사랑 내곁에"를 가요사에 영원히 남게되는 불후의 명곡으로 만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