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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 락

[스크랩] John Lennon

by 부산 성광 오디오 2012. 11. 29.



 
 
Love John Lennon Love is real Real is love Love is feeling, feeling love Love is wanting to be loved 사랑은 진실한 것, 진실은 사랑 사랑은 느끼는 것, 느끼는 사랑 사랑은 사랑받기를 원하는 것 Love is touch Touch is love Love is reaching, reaching love Love is asking to be loved 사랑은 접촉, 접촉은 사랑이죠 사랑은 다가가는 것,다가가는 사랑 사랑은 사랑 받기를 요구하는 것 Love is you, you and me Love is knowing we can be 사랑은 당신,당신과 나 사랑은 우리가 사랑할 수 있단걸 아는 것 Love is free Free is love Love is living, living love Love is needing to be loved. 사랑은 자유,자유로운 사랑 사랑은 우리가 살아 가는 것, 살아 가는 삶은 사랑, 사랑은 사랑받기를 원하는 것.

존레논은 1940년 10월 9일 리버풀시 옥스퍼드거리 매터니티병원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가난한 영국서민층 집안에서 태어난 존레논은 어릴적부터 노동자 성향을 가지고 태어나게 됩니다.
(훗날 이러한 성향은 1969년 정도 서부터 드러나게 됩니다.)
어려서부터 일찍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어린 존레넌을 버립니다.
(훗날 아버지가 존레넌의 성공을 보고 다시 와서 돈을 요구하러 존레넌을 찾아왔지만, 존이 그를 좇아냈다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존레넌에 대한 에피소드가 하도 많아서 말입니다 이 얘기가 사실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존레넌에 대한 정확한 에피소드는 거의 없다고 봐도 사실 무방합니다.)
그래서 어릴적부터 이모가 존레논을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존레논은 그녀를 미미이모라고 불렀습니다. 미미가 그 이모의 별칭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인터뷰에서 그녀를 미미이모라고 부르더군요.)
점차 머리가 굵어지면서 존레넌은 블루스, 리듬앤블루스, 록캔롤에 심취하게 됩니다. (비틀즈 멤버였던 폴매카트니는 비틀즈 멤버 네 명의 고향이었던 리버풀이 항구도시라서 미국문화가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이런 미국흑인음악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존레넌은 주로 Little Richard(유명한 미국 흑인 블루스 가수입니다. EBS만화에서 했던 "신기한스쿨버스"라는 만화 있죠? 그 만화의 주제가는 "Itsy Spitsy Spider"라는 흥겨운 록캔롤 노래를 약간 변형시킨노래였는데요, 이 곡이 바로 Little Richard가 불렀습니다. 인터넷에 공식웹사이트도 없는 걸 봐서는 인기가 많이 없어졌음을 느낄 수 있죠.. 사설이 길었네요... 계속 설명해드리죠..), Elvis Presley(너무 유명해서 설명하기가 뭐...-_-_), Chuck Berry(Rock'N'Roll이라는 장르를 거의 최초로 만든 사람이죵~~ 이사람의 곡은 수많이 리메이크 되었죠.. 그의 노래 "Rock'n'roll Music", "Roll Over Beethoven", "Johnny B. Goode"같은 노래들은 수많은 가수가 리메이크합니다. 비틀즈, 레슬리웨스턴마운틴, E.L.O., 심지어는 유명한 메틀그룹인 주다스프리스트까지...) 등의 곡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이제 고등학교에 입학한 존레넌은 (그 고등학교 이름이 "Quarry High School"이었나요? 잘 모르겠군요.. 인터넷 함 뒤지면 쫙나오니까... 함 뒤져보세요..) 퀘리멘밴드같은 모드음악같은걸 했습니다. (거의 학교에서 날라리들 모여서 만든 패거리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 쿼리멘밴드에서 1962년 까지의 무명비틀즈 시절은 일단 너무 복잡하니까 이야기를 생략하겠습니다. 인터넷에서 뒤지시면 쫙 나오니까요... 따로 설명은 안해도 될 것 같군요... 고등학교 시절 폴, 죠지, 링고를 만나서 비틀즈를 조직하게 되는 계기까지 말이죠...

1962년까지는 리버풀에서 쫌 유명한 밴드로서 활약을 했지만(각종 파티에 초대되는 등...) 거의 무명밴드였습니다. 그동안 Decca같은 큰 회사에도 함 오디션을 봤지만 떨어지고.. 하여튼 당시 여기저기 전전한 이야기는 좀 유명하죠..

하지만 그들의 가능성을 본 사람이 있었습니다. PARLOPHONE음악회사의 Producer로 일하고 있었던 George Martin이었습니다. 1963년에 이들은 죠지마틴과 여러모로 비틀즈 홍보를 위해 열심히 뛰었던 Brian Epstine(동성애자였습니다. 비틀즈 중기시절 자살했습니다. 이유는 그렇게 키웠던 비틀즈가 날 무시했다는 둥 그리고 더이상 나는 쓸모가 없다는 둥 우울하다는 둥.... 하여튼 그렇다더군요.. )과 The Beatles의 그 천재적 음악성이 조화를 이루어 첫 앨범 "Please Please Me"를 발매하게됩니다. 제가 알기로는 처음엔 좀 인기가 낮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열심히 홍보하고 사람들의 반응으로 드디어 차트 1위에 오르게됩니다.
2집 With The Beatles도 유럽여기저기서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게 되죠... 엄청난 반응 이었습니다. 3집 앨범 A Hard Day's Night을 발표할 때 즈음해서 이제 미국에서도 성공하게 되고 영화 A hard day's night을 찍게됩니다. ( 이 영화도 무지하게 흥행했습니다. 물론 영화의 예술성은 없습니다. 그저 팬들이 열광하면서 본거죠... 장르는 코미디였습니다. )



이제서부터는 The Beatles가 아니라 John Lennon 개인에 대해 말씀드리죠....
63년 이전의 무명시절, 여러 클럽에서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노래를 불렀던 존레넌은 이제 스튜디오에서 음악을 작업하게 되면서 블루스와 자신만의 어떤 음악세계가 와장창 깨졌다고 말합니다.(1980년 플레이보이지와의 인터뷰에서...) 여기저기 기획사에 의한 생활, 하루 최고 3번까지 공연을 하는 고된 노동은 그를 정신적으로 황폐화 시켰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65년경에 위대한 포크록가수 Bob Dylan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John Lennon에게 마약을 가르쳐주고(담배가르쳐주듯...)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보라고 조언을 해주기에 이릅니다. 당시 밥딜런은 모호한 가사로 당시 사회를 비판한 대중가수였습니다. 그의 노래에는 힘이 있었죠.. 당시 존레넌은 그저 사랑노래(She Loves You라는 곡을 볼까요? 그년은 너를 사랑해.. 사랑해... 다른 노래들도 거의 마찬가지죠....)만 작곡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록큰롤 세계와 어떤 사회비판은 아니더라도 그와 비슷한 예술세계를 체험하게 되고 이제는 자신의 음악세계를 통렬하게 바꿔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듯 65-66년은 John Lennon에게 있어서 엄청난 음악의 변화를 보이게됩니다. 당시에는 Psychedelic이라는 음악장르가 유행하던 시기입니다. 이 싸이키델릭이라는 음악은 LSD와 같은 마약물에 의존해서 자신의 영혼, 무의식 세계를 돌아보는 음악장르 중의 하나입니다. 좀 앞선 시대에 프로이트, 융같은 정신분석학자들은 마약물과 무의식 세계에 관한 여러 논문을 발표하게 됩니다. 이러한 무의식의 세계를 어떤 영혼의 깊은 움직임으로 파악하게 되고 이게 회화에 있어서 슈어리얼리즘 즉, 초현실주의로 발전하게 이르죠.. 이게 음악에도 적용이 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신비스러운 음악, LSD가 정신을 지배하는 상태, 즉, 초자아성 무의식세계에서의 음악작곡은 자신의 어떤 깊은 영혼, 의식의 내면을 잡는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이렇게 Psychedelic을 널리 전파하기에 이르릅니다. 이러한 싸이키델릭 문화는 히피들을 사로잡는데 성공합니다. 머리에 꽃을 꼽아서 자연신관, 영혼의 움직임, 사랑, 개방된 성문화를 외치는 히피들에게 Psychedelic은 신앙이자 법도와도 같은 것입니다. 이런 음악은 Bob Dylan도 영향을 받게 됩니다. 당시 밥딜런의 이상한 가사들과 블루스적 색채의 음감(당시 포크는 블루적 색채의 음감은 전혀 없었습니다.)을 보면 느낄 수 있죠. Subterranean Homesick Blues같은 노래 말입ㄴ디ㅏ.

어쨋든 John Lennon은 이런음악에 심취하게 되죠. 이런데서 영향을 강하게 받아 "She Said"같은 곡을 작곡하기에 이릅니다.또 싸이키델릭 5대명반 중에 2개가 The Beatles것입니다. "Sgt.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Revolver"앨범이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앨범은 정말 예술적으로 뛰어난 앨범입니다. 마지막 트랙인 "A Day In The Life"는 정말 압권입니다. 여기서 한 오케스트라를 초청해서 동물가면을 씌우고 모든 음을 반음씩 반음씩 올리는 부분은 정말 그들의 기이하고 신선한 음악적 충격 그 자체입니다. 또, "Revolver"는 다분히 싸이키델릭스러운데요.. 앨범디자인을 유명한 팝아트 회화가 Andy Warhol이 제작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Magical Mystery Tour"에서는 "I Am The Warlus"로 몽환적 사운드를 제시합니다. 뿐만 서서히 이런 예술운동뿐만이 아니라 이제는 사회문제에도 점차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요. 천성적인 노동자계급의 체질이었던 그는 본격적으로 사회주의 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자유를 외치니 아이러니컬할 수 밖에요. 아마도 그에게 사상운동은 명확한 체계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Psychedelic의 완전한 자유주의성향과 그의 선천성적인 사회주의성향이 맞물리는 이 모순은 노래에도 드러납니다.) 주로 이런 사회문제를 John Lennon노래에 거의 최초로 드러나는게 "Revolution"이라는 곡입니다. 가사에는 "마오쩌뚱"(Chairman Mao)가 등장하질 않나... 헌법을 뜯어고치자고 하지 않나..(change the constitution) 이렇게 말입니다.
(이건 비틀즈노래야! 라고 반문하실 듯 하군요.. 예! 저도 압니다. 허나, 사실 거의 존레넌의 노래라고 하는게 더 옳습니다. 작곡의 주체자문제에서 말입니다.)
The Ballad Of John And Yoko같은 노래에서는 "Christ, You know it ain't easy"라는 모호한 가사로 서서히 존레넌의 어떤 모호한 음악세계가 드러나게 됩니다. 실제로 사회주의자들하고도 같이 술을 마시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또 The White Album에 수록된 "Revolution9"은 정말 그로테스크한데요.. 미술의 꼴라쥬기법을 음악으로도 표현한 좋은 새로운 시도였습니다. 굉장히 혁신적인데요.. 여기서 백워드매스킹 기술을 사용합니다. 이 곡에서 전체적으로 "Right"을 외치며 역사에 거스르는 산물을 부정하고 시위하는 외침의 목소리가 드러납니다... 그리고 "Number Nine..."을 계속말하는 것도 뭔가 음울한 시대상을 반영하는 듯 싶구요..

1967년의 몬트레이 팝페스티벌, 1968년의 프랑스68혁명봉기, 1969년의 우드스탁같은 일련의 사건들은 당시 히피였던 존레넌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것 같습니다. 이런 영향에서 나온 곡이 바로 "Come Together"입니다. 노래가사도 그렇죠... 히피가 강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곡들은 문화계, 정치계에서도 많은 영향을 미쳤고, 역사에서도 지금 높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도 어떤 역사적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겠죠.. 역사진보과정의 어떤 리더로서말입니다.

Ono Yoko라는 전위예술가를 만나게 되는데 일본에서 온 이 동양여자는 존레넌에게 강렬한 쇼크와 인상을 남깁니다. 당시에는 전위예술이라고 해서 모든지 다 파괴하는데(전위라는 말에서 드러나죠..), 오노만큼은 그런 시대에 전위예술의 또 다른 해석으로 'Yes' 즉, 사랑과 긍정에 대한 탐구를 설치미술로 드러내었습니다. 그런데서 존레넌은 미묘한 감정을 느꼇고 '이 여자다' 싶어서 결혼하게 됩니다. 존레넌이 처음 오노를 만났을 때도 Ono Yoko의 설치미술을 감상했을 때랍니다. 요코는 큰 사다리(혹은 계단일 수 도있습니다...)를 만들고 그 위에 망원경과 같은 것을 올려놓았습니다. 당시 존레넌은 이건 또 어떤 전위예술로 어떠한 반대를 할까 궁금해서 그 망원경안을 보았을때는 그를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아고 했습니다. 왜냐면, 거기에는 간단하게 'Yes'라고 적혀 있었거든요,..

사실 엄마없이 자란 레넌은 오노요코에게 어떠한 모성애도 느꼇습니다.


오노요코와의 결혼(전부인과의 이혼), 또 유산(1968년입니다.)등은 그에게 또다른 좌절을 안기긴 했지만 아마 1969년이었을것입니다. The Beatles는 거의 해체직전이었고(공식발표는 1970년에 있었습니다.) Abbey Road, Let It Be 등의 비틀즈 앨범을 거의 다 마무리 짓고, 그의 독자적 밴드 The Plastic Ono Band를 조직합니다. New York콘서트에 보면 그들은 거의 히피성이 강하더군요..


또 "Bed-In"사건도 유명합니다. 존과 요코는 이세상에 전쟁이 멈추는 그날 까지 침대에서 내려오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내려오게 되죠..(당연하죠.. ^_^;)

어쨋든 이들은 정치적 색채(사회주의적)의 곡들을 많이 발표하게 됩니다. "Imagine"같은 경우는 그의 사상의 유토피아를 "상상"해보라는 메시지가 있죠... "Give Peace A Chance"는 당시 Johnson대통령(맞나?)의 월남전 및 세계여러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의 메시지가 있죠.. "Power to The People"...말 그대로 군중에게 권력을 달라는 말이죠.. 폴매카트니는 그를 허풍선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럴만하죠...
당시 존레넌의 노래에는 강한 정치적 성향, 히피적 성향이 드러납니다.

그 다음으로 오노요코와의 별거가 이어집니다. 요코가 일방적으로 레논을 집에서 쫓아 냅니다. (자격이 없다구요..) 존레넌은 어떤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되고 반성을 하기 전에는 또 방황으로 술을 마시게 됩니다. 당시 술친구로는 Woodstock축제로 세계적 명성을 드높이고 있던 Hard Rock Group "The Who"의 드러머 "Keith Moon" 등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The Who도 영국왕실을 강렬하게 비판하고 노동자 문제, 실업문제에 관심을 기울였었습니다. 그들의 대표적인 노래 "Yougman Blues"에는 보수적 중장년층이 돈을 다 가지고 젊은이들은 실업자로 남는 실태를, "Summertime Blues"(물론 그들의 노래는 아닙니다만,)에서는 어떤 투표권문제를 다루었죠..

그러나 "Keith Moon"이 결국 알콜중독으로 죽고나자 존레넌은 정신을 차리기 시작합니다. 삶을 다시 반성하고 오노요코에게로 다시 돌아가게 됩니다. 이 때에 그는 "전업주부"를 하기로 선언합니다. 당시 이러한 발표는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남자가 주부라니!! 이렇듯 존레넌은 앞서나가는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존레넌은 사회문제뿐만이 아니라 어떤 예술의 진보문제, 인류애, 작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게 됩니다. "Love", "Woman"같은 곡들 말입니다... "Jealous Guy"같은 곡처럼 자연주의분위기적 곡도 발표하게됩니다.(물론 가사가 자연주의는 아닙니다. 곡분위기 말입니다.)

사회운동에서 전업주부로 바뀐 존레넌은 이제 1980년쯤에 다시 곡을 발표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앨범작업이 한참이던 1980년 12월에 암살당하게 됩니다. 자신의 아파트 다코타아파트 앞에서 말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작업중이었던 곡들이 사후에도 발표되면서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합니다.

1990년대 중반에는 "The Beatles Anthology"에서 존레넌이 노래작업하다가 중간에 만 노래 "Free Bird", "Real Love"같은 노래를 발표합니다. 이것도 빌보드차트 1위였구요...


사실 존레넌에 더 알기위해서는 1967-1969년의 미국대학가 시위운동, 컬럼비아대 총학생회 사건등 당시의 사회적 이슈를 더 아셔야 합니다. 당시 히피들, 그 엄청난 대가의 피들과 사회격변기를 잘 알아야 합니다. 당시 우리는 사정이 우리먹고 사는데 바빠서 당시의 세계정서는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잘 다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Jim Morrison, Jimi Hendrix, Janis Joplin같은 3J같은 사람들도 있고... 하여튼 말입니다.

당시 세계는 인간의 자유와 사랑을 위해 엄청난 투쟁과 피의 항쟁이 있었습니다. 그 중심에 존레넌과 같은 사람이 있었구요... 물론 존레넌 혼자 중심이 된건 아니죠.. Andy Warhol과 같은 회화가도 있구요.... Jefferson Airplane이란 싸이키델릭 그룹도 있었구요... 프랑스 좌익정치계 사람들도 있었구요...


 

 

 

 

존 레논의 벌거벗은 사랑
Love - John Lennon

 




 

위 사진이 매우 외설스럽다고요?
    비틀즈의 창설멤버이자 맏형 격인 존 레논(1940-1980)과 그의 부인 오노 요코(1933-일본)가 이렇게 전라의 모습을 보이는 건 그리 진기한 일이 아닙니다. 두 사람의 기행에 가까운 이런 일은 여러번 있었으니까요. 영국이 자랑하는 혁명적인 팝그룹 비틀즈의 탄생만큼 존 레넌은 대단한 음악을 했고 반전 평화운동에다 벌거벗은 자유의 사랑을 몸으로 실천해 보였습니다. 7살 연상의 전위미술가 오노 요코를 두번 째 부인으로 만난게 1966년인데, 4년 뒤인 1970년에 비틀즈와 헤어진 첫 솔로앨범 'John Lennon/The Plastic Ono Band'를 냈지요. 여기에 위의 노래 'Love'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존 레논이 오노 요코 때문에 비틀즈에서 탈퇴하고 40세 때 괴한의 총에 맞는 불운을 겪게된게 아닌가고 말도 많았습니다. 한국의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과도 친했다는 오노 요코는 지난 2003년에 서울에 와서 작품전시회를 가진적이 있답니다.
    《esso》
    출처 : 한사람 여기에..........
    글쓴이 : 어린왕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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