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뜸했었지 / 사랑과 평화
1.한동안 뜸했었지
웬일일까 궁금했었지
혹시 병이 났을까
너무 답답했었지
안절부절 했었지
2.한동안 못 만났지
서먹서먹 이상했었지
혹시 맘이 변했을까
너무 답답했었지
안절부절 했었지
꺼져가는 한국록 숨결을 이어간 70년대의 마지막 밴드 사랑과 평화
삼형제 밴드 산울림이 음악을 직업으로 삼지 않았던 젊은이들에 의한
기습 봉기였다면, 70년대의 마지막 밴드 ‘사랑과 평화’는
음악말고는 삶에 승부를 걸 것이 없는 직업적인 대중음악가들의
야심에 찬 승부수였다.
유신정권의 ‘가요규제조치’ 이후 청년문화의 전위였던 밴드의 무대가
야간업소로 제한되었던 시대에, 그나마도 ‘찍히면’
갖가지의 방해공작으로 인해 기타를 손에서 놓아야 했던
그런 암울한 시대에,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했던 한국의 밴드 문화는
1976년부터 일기 시작한 트로트의 왕정복고에 줄줄이 가담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 행진의 예광탄이 되었던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노래말대로 청년문화의 ‘형제’들이 떠난 폐허 위에 트로트는
순식간에 ‘갈매기’처럼 슬피 울기 시작했다.
‘He6’와 ‘검은 나비’를 거친 최헌은 〈오동잎〉부터
연이은 성공을 거두었고 트리퍼즈의 리더 김훈은 〈나를 두고 아리랑〉
으로, 그리고 윤수일과 조경수는 각각 〈사랑만은 않겠어요〉와 〈
아니야〉로 스타덤에 올랐다.
이와 같은 총체적인 매너리즘의 상황에서 서구 록 음악의 ‘좋았던 시대’인
60년대의 슬로건을 요약하는 ‘사랑과 평화’라는 이름을 앞세운
밴드의 데뷔는 단지 그 자체로써 신선한 사건이 되었다.
그러나 시대적 배경을 감안한다면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이들이 내보인 음악이 자신의 이름에 걸맞는 록 음악의
원형질바로 파괴적이고 직설적인 몸부림의 미학은 아니었다.
‘사랑’은 통속적인 범주에 머물러 있었고 ‘평화’는 권력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일종의 휴전과 같은 그런 성질의 것이었다.
하지만 정교한 리듬 감각으로 무장한 기타리스트 최이철과
재기 넘치는 사운드 효과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던 키보드 주자
김명곤은 불굴의 정신 대신 새로운 스타일을 탐구하고
제시함으로써 완강한 벽 앞에서 좌초한 한국 록 밴드의 맥락을
또 다른 골목에서 이어가고자 했다.
그것은 능수능란한 코드 진행과 조바꿈, 새털 같이 가벼운 펑키 리듬에
입각한 날렵한 악상, 마우스 튜브나 두 대의 키보드에서 제출되는
다양한 음향 효과를 통해 여실히 증명된다.
천편일률적인 팝트로트나 대학가요제의 아마추어리즘에
만족할 수 없었던 젊은 수용자들이 이들에게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한 것은
또한 당연한 것이었다.
이 앨범의 머릿곡이자 맹렬한 반응을 집중시켰던
〈한동안 뜸했었지〉가 야간 업소의 흥청거리는 구애의 분위기를
분만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읽기에 따라선 ‘한동안 뜸’했고
‘속절없이 화풀이를 달님에게 해댈’ 수밖에 없었던
어떤 응어리를 행간에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앨범의 미흡함은 숨길 수 없다.
특히 베토벤의 운명을 위시하여 세곡이나 되는 서구 고전음악의 편곡 연주는
납득하기 어렵다. 그러나 6분이 넘는
〈어머니의 자장가〉와 뒷면의 첫 곡인 〈저 바람〉은
근 이십년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도 예리한 향기가 번득인다.
하지만 〈장미〉와 〈얘기할 수 없어요〉를 담은 두번째 앨범을
마지막으로 이들도 대마초의 덫에 걸려 좌초하고 만다.
사랑과 평화는 이후 80년대 전반에 걸쳐 진행된
서구 대중음악의 본격적인 내면화 과정의 역사적 전제가 되는
하나의 이정표였다.
사랑과평화, [한동안 뜸했었지]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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