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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 락

Epitaph (묘비명) / King Crimson

by 부산 성광 오디오 2014. 6. 30.

Epitaph (묘비명) / King Crimson 

 

 

 

    Epitaph (묘비명)

     King Crimson

 

The wall on which the prophets wrote is cracking at the seams

Upon the instruments of death, the sunlight brightly gleams

When every man is torn appart with nightmares and with dreams

Will no one lay the laurel wreath when silence drowns the screams

Confusion will by my EPITAPH

As I crawl A cracked and broken path if we make it we can all

Sit back and laugh but I fear tomorrow I'll be crying yes

I fear tomorrow I'll be crying yes I fear tomorrow I'll be crying

 

Between the iron gates of fate the seeds of time were sown

And watered by the deeds of those who know and who are known

Knowledges are a deadly friend if no one sets the rules

The fate of all mankind I see is in the hands of fools

에언자들이 그들의 예언을 새겨놓은

벽에 금이 가고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이름의 악기 위에

햇살이 빛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악몽과 꿈으로 흩어진다면 아무도 승리의 월계관을

쓰지 못할 겁니다.

침묵이 절규를 삼켜버리고

금가고 망가져 버린 길을 기어갈 때

혼란이 나의 묘비명이 될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면

뒤에 앉아서 웃을 수 있지만

고통스러운 내일이 두렵습니다.

나는 울고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내일 때문에...

고통스러울 미래가 나를 울게 합니다.

운명의 철문 사이로

시간의 씨앗이 뿌려지고

아는 자와 알려진 자들에 의해서

물이 뿌려집니다.

아무도 규칙을 지키지 않을 때 지식이란 죽은 친구와 같습니다.

내가 보기에 모든 인간들의 운명은 바보들의 손에 쥐어져 있습니다.

 


 

 

킹 크림슨 (King Crimson) : 1969년 영국에서 조직된 록 밴드

 

멤버 : 로버트 프립(Robert Fripp, 기타, 사운드스케이프), 아드리안 벨루(Adrian Belew, 기타, 보컬), 토니 레빈(Tony Levin, 베이스, 채프만스틱), 팻 매스텔로토(Pat Mastelotto, 드럼, 퍼커션), 게빈 해리슨(Gavin Harrison, 드럼)

 

Epitatph 의 노래로서 인간의 어리석고 오만한 지식이 자신을 파멸시킬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경고를 담고 있다. 신비롭고도 환상적인 음악을 창조해내는 영국 출신의 그룹 King Crimson은 1969년 1월 조직되어 4월에 데뷰했다. 연말에 발표한 데뷰 앨범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은 영국에서 그룹 Beatles의 「Abby Road」를 누르고 톱을 차지했다. 당시의 멤버는 Robert Fripp(기타), 마이클 자이즈(드럼), Ian McDonald(엘토 색스, 플륫, 클라리넷, 멜로트론), Greg Lake(베이스, 리드보컬), Peter Sinpfield(작사, 조명) 등이었다. 그러나 1970년 1월에 마이클 사일즈와 이언 맥도날드가 이 그룹을 떠나 새로운 그룹을 만들자, 그후부터 로버트 후립과 피터 신필드 두사람이 곡을 써 두번째 앨범 「In the Wake of Poseidon」을 발표했다. 이때 데뷰 앨범에서 베이스키타를 담당했었던 그레그 레이크는 보컬만을 맡았고 베이스는 킹 크림슨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자일즈, 샤일즈 & 후립의 멤버였던 피터 자일즈가 맡았다. 그리고 색스폰주자 Mel Collins와 베이스주자 Gordon Haskell, 그리고 재즈 피아니스트 케이스 티페트가 참가했다.

 

두번째 앨범이 발표될 무렵 그레그 레이크는 Keith Emerson과 트리오를 만들기 위해 탈퇴하였다. 그러나 로버트 후립은 유능한 새 멤버를 물색하여 다음 앨범을 제작, 1970년 12월, 세번째 앨범 「Lizard」를 발표하였다. 이 앨범의 모든 곡을 로버트 후립과 피터 신필드가 만들었고 프로듀서도 겸했다. 다름 멤버로는 플륫과 섹소폰에 멜 콜린즈, 베이스키타와 보컬에 고든 하스켈이. 드러머에는 샌터 크랩뉴먼 출신의 Andy McCulloch 였고 게스트로는 오보에 주자 로빈 밀러, 코넷에 마크 챠릭, 트럼본에 닉 에반스, 피아노와 일렉트릭 파이노에 케이스 디페트와 같은 영국 재즈계의 중견들이 얼굴을 나타냈고 또 애수의 보컬리스트 John Anderson이 참가했다. 그후 멤버에 변화가 있어 드럼에 아이언 윌리스, 베이스에 실스로 바뀌었다. 1971년 5월부터는 69년 데뷰 공연이후 중지되었던 스테이지 활동을 전개하는 등 맹활약을 했으나 72년 작사와 조명을 맡았던 피트 신피드가 로버트 후립과의 의견 충돌로 인하여 그룹을 탈퇴, 아쉬움을 가진채 킹 크림슨은 해산되었다. 그러나 73년 로버트 후립을 선두로 새 킹 크림슨이 조직되면서 앨범 「Island」와 「Lark's Tongue In Aspic」을 발표하여 더욱 완숙한 음악을 들려주었으며, 이 앨범은 70년대 전반에 걸쳐 브리티쉬 프로그레시브록의 나아갈 바를 제시해 주었고 그룹 자체로서는 Yes나 EL & P 또 Genesis 등 수많은 그룹에 활로를 열어 주었다.

 

그의 음악이나 마찬가지로 후립의 성격 또한 격렬한데다가 선동적인 기질이 다분히 엿보이는데 그룹활동 6년 동안 쉴 새 없이 멤버가 교체되었고, 결국 75년 완전히 그룹을 해산하고 후립은 잉글랜드 셔어본 지방에 있는 농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공백기간동안 후립은 친우이자 신세사이저의 마술사인 Brian Eno와 함께 앨범 「No Pussyfooting」과 「Evening Star」 등 두 장의 일렉트릭 사운드 앨범을 레코딩하였으며, 77년 Davie Bowie의 앨범 「Heroes」에 참가하기 전까지 록계에 복귀했다고 볼 순 없었다. 그 앨범에서 벌인 기타세션이 계기가 되어 그는 다시금 프로뮤직의 세계로 뛰어들게 되어 그 해 말 Daryl Hall과 그룹 The Roches의 앨범을 프로듀스하는 등 폭넓은 활동을 벌였다. 78년 후립은 테이프 음향 녹음과 라이브 기타사운드를 혼합 발전시킨 스타일의 Frippertronics라는 새로운 음악의 장을 열어, 이 이론에 입각한 앨범 「God Save The Queen / Under Heavy Manner」를 내놓으면서 스튜디오 뮤지션으로 확고한 신망을 얻었으며, Polidol 레코드사에서 솔로 앨범 「Exposure」 등을 발매하였다. 그리고 80년 그룹 League of Gentleman의 이름으로 발매한 앨범 「League of Gentleman」은 오리지널 크림슨이 해산한 후 그가 걸어온 과정을 보여주는 의미있는 앨범이었다. 그러나 로버트 후립은 1981년에 일부 멤버를 교체하고서 4명의 새로운 킹 크림슨을 만들어 앨범 「Pisciplin」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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