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 돌아와요 부산항에 원곡 3곡과 같이 듣기
(김해일 돌아와요 충무항에부터)
■ 1970년 김해일이 《돌아와요 충무항에》로 최초 발표
■ 1972년 조용필이 《돌아와요 부산항에》(일명:돌아와요 해운대)로 취입했으나 힛트 못함.
■ 1976년 조용필이 새롭게 편곡해서 발표한 《돌아와요 부산항에》 공전의 히트를 기록
■ 1980년 조용필의 정규1집《창밖의여자》앨범에 재수록된 《돌아와요 부산항에》가장 많이 알려진 버전
조용필 돌아와요 부산항에 탄생비화
블로그 ‘알버트 이야기’에 돌아와요 부산항에 원곡에 대한 내용이 상세하게 작성해 이를 먼저 소개하면 원곡은 1970년에 김해일(본명:김성술)이라는 가수가 처음 발표한 ‘돌아와요 충무항’이었다. 이 노래를 부른 김해일씨는 1971년 12월 25일에 발생한 대연각 호텔화재 사건의 피해자로써 노래를 발표한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고 한다.
김해일 부모는 자식을 잃은 슬픔에 전국에 유통되고 있던 자식의 음반을 모두 수거하여 소각하였기 때문에 돌아와요 부산항에 원곡을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한다. 그러다가 1972년 작곡가인 황선우씨가 김해일씨 작사의 원곡 가사를 일부 수정하여 조용필을 통해 ‘돌아와요 부산항에‘라는 새로운 곡명으로 다시 취입하여 발표한다.
여기서 부터는 1991년 6월 2일자 동아일보에 자전에세이 나의길<57> 조용필이 이야기하는 내용이 있는데,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조용필의 음악인생은 초등학교 시절 시골에서 한 밤중에 들려오는 하모니까 소리를 처음 들으면서라고 한다. 그리고 서울에서 유학하던 중학교 2학년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밤하늘의 트럼펫 연주를 듣고 트럼펫을 배우고 싶었으며, 작은 형이 치던 기타를 만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기타연주자가 되고 싶어 했고 학교를 졸업하지 ‘아트킨스’라는 아마추어 그룹을 조직해 미8군 무대에서 뛰어들었지만 실패한다.
당시만 하더라도 기타 연주자였던 조용필은 우연한 기회에 노래를 하게 되었고 그것이 가수의 길을 선택하게 만든다. 이후 다른 가수와 공동으로 음반을 냈지만 빛을 보지 못하고, 76년 ‘너무 짧아요’를 머리곡으로 두 번째 앨범을 낸다. 당시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구색으로 실었다고 한다. 그런데 엉뚱하게 돌아와요 부산항에 노래가 히트를 한 것이다. 당시 밤무대에서 외국 노래만 부로고 있는데, ‘돌아와요 부산항에’ 신청이 들어왔지만 자신은 이 노래를 기옥할 수 없었다고 한다. 즉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노래가 돌풍을 일으킨 것이다.
시골출신의 무명가수가 갑자가 유명해졌고 방송에 불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기간은 오래가지 못하고 곧바로 대마초 사건으로 가수생활을 중단해야 했다. 이후 다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이 노래의 히트 덕분에 가수생활을 접었던 생각을 하면서 정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79년 12월 6일 조용필이 해금이 되면서 다음날 당시 동아방송의 안평선 PD로부터 드라마의 주제가를 작곡해 불러달라는 요청을 받아 탄생한 것이 ‘창밖의 여자’였다고 한다. 1980년 창밖의 여자라는 앨범에 다시 '돌아와요 부산항에' 노래를 수록하게 되는데, 이 앨범에 수록된 곡이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돌아와요 부산항에 노래이다.
다시 블로그 ‘알버트 이야기’에 작성되어 있는 내용에 보면 가수 김해일씨의 어머니는 2004년 돌아와요 부산항에 작곡가 황선우씨를 상대로 저작권 소송을 제기하였는데, 원곡인 ‘돌아와요 충무항에’의 가사를 김해일씨가 썼는데 이를 일부 수정하여 황선우씨가 사용하였기 가사를 표절했다는 소송이었다. 재판부는 3000천만원을 배상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고, 황선우씨가 김해일씨 유족에게 합의금을 지불하는 것으로 최종 마루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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