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재즈 & 블루스

명혜원 - 청량리 블루스

by 부산 성광 오디오 2016. 4. 26.

 

 

 

 

늘어진 커텐 황혼이 젖어
화병 속에 한 송이 국화

긴 하루 걸린 창에 앉아
타는 해를 바라보네

내 빈 방을 채워줘요
부루스를 들려줘요

호사한 밤은 아직 먼데
예쁜 꽃불 어디에 켤까

내 빈 방을 채워줘요
부루스를 들려줘요

타는 황혼 타는 국화
타는 황혼 타는 국화
타는 황혼 타는 국화

늘어진 커텐 황혼이 젖어
화병 속에 시든 국화

 

 



한국가요사 속에 블루스

흑인음악중에서 우리 가요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블루스(Blues)소울(Soul) 그리고 최근에 리듬 앤 블루스(R&B)가 있다.
소울은 1960년대 후반을 장식했고, 블루스는 1980년대 후반에 유행했지만, 블루스는 거슬러 올라가면 이미 1940년대에 도입된 장르이다.
블루스
란 19세기 중엽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미국의 흑인 노예들에 의해 만들어진 가곡의 형태이다.
흑인 노예들이 백인의 청교도적인 종교에 귀의해 나온게 가스펠(Gospel) 인 반면 블루스는 한(恨) 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흑인영가를 집단적인 노래라고 한다면 블루스는 개인적인 고독과 삶의 투쟁에서 자생적으로 태어난 차이가 있다.
한마디로 블루스는 가장 고독하고 괴로움과 슬픔 그리고 절망감에 빠진 주인공들만이 부르는 노래로서 항상 1인칭으로 자신만이 자기를 향해 들려 주는 노래이다.
여기에서 노래를 듣는 사람은 노래 부르는 사람과 같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음악적 형식에서 블루 노트 스케일로 멜로디 라인을 이루고 있다
( 8 음계에서 내림 마와 내림 나를 반음씩 내려 사용하는 형식).
이 음악이 술집 등지에서 방랑 시인적인 남성 가수들에 의해 불려지다가 20세기에 들어와 여자 가수들도 참여하기 시작했으며 악기 구성은 피아노 혹은 소편성 캄보 밴드로서 1920년대 블루스의 여왕이라는 베시 스미스 가 등장하면서 일반화 되었다.
이 땅에서 블루스의 기원은 일제시대로 거슬러 올라 간다. 이미 일본에서는 1937년에 이별의 블루스, 비의 부르스 가 나왔는데 이들의 특징은 일본의 고유음계인 단조의 멜로디 라인으로 부점 8분음부, 16분음부를 배합한 4/4박자의 느릿한 템포로 구성되어 있는 미국의 흑인 고유의 블루스 형식과는 무관한 구성으로 단지 느릿한 4박자의 리듬을 블루스라고 명명한데서 일본풍의 블루스의 원형같은 스타일로 고착되었다.
1938년에는 샹하이 부르스가 나와 새로운 블루스풍의 아성을 이루었으며 1945년 일본이 패전한 이후에는 수많은 블루스가 만들어 지면서 유행가의 한 장르가 된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1939년 다방의 푸른 꿈 (김해송 작곡,이난영 노래)이 비교적 블루 노트 형식을 모방한 곡으로 선보인 이래 1941년 선창의 부르스 (전기현 작곡)가 일본식 블루스풍의 효시이다.
이어서 해방이후 애수의 네온가 (박시춘 작곡), 청춘 부르스 (옥두옥 노래), 1955년 무정 부르스 (백설희 노래)등이 소개 되었다.
1956년 밤비의 부르스 (김부해 작곡 안정애 노래)등이 소개 되었다.
1959년에는 대전부르스 (김부해 작곡 안정애 노래)가 히트곡이 되었고, 1960년에는 소공동 부르스 (박시춘 작곡 도미 노래), 1969년에는 사나이 부르스 (남국인 작곡 배성 노래) 등이 나왔다.
이들 곡은 모두 일본풍의 블루스 스타일로 트롯류 블루스 의 전형이 되었다.
이처럼 블루스트롯계열에 명맥을 이어 1980년대에도 주현미는 눈물의 부르스, 신사동 부르스, 영동 부르스 등 일련의 블루스를 내놓았지만 재래적인 일본풍의 블루스 스타일은 조금도 그 속성을 벗어나지 않고 있는데 한국의 대중문화는 한(恨)의 문화 라는 말처럼 불변색이었다.


다시 말해 트롯 가요에 멜로디를 블루스적인 리듬에 얹은 편법을 지금껏 쓰고 있는데 트롯류의 블루스는 한결같이 약속이나 한 듯이 블루스 부루스 또는 부르스 로 표기하고 있는 것도 올바른 표현이 아니다.
이렇듯 잘못 오도된 부루스 또는 부르스 와는 구분된 포크 블루스(Folk Blues)가 70년대에 들어 통기타 가수인
오세은. 양병집에 의해 시도됐다.
그것은 멀리는 피트 시거. 밥 딜런 등 포크 가수들의 음악에서부터 60년대 후반 라이처스 브라더스 등의 블루 아이드 소울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런 가운데 본격적인 틀을 갖춘 것은 이정선이 1972년 오늘같은 밤을 시작으로 하여 1978년 건널수 없는 강을 발표하면서 거의 완벽하게 블루스를 가요화 시켰다.
또 역시 포크 블루스에 관심이 많았던 엄인호는 이정선의 영향을 받아 내마음은 바람인가 라는 블루스곡을 만든게 계기가 되어 이정선, 엄인호 그리고 이광조가 어울려 풍선들이란 그룹을 만들어 블루스를 시도 했지만 이렇다할 성과가 없었다.
70년대 말경 신촌에 위치한 카페 레드 제플린에서 이정선을 비롯하여 이광조, 엄인호, 한영애가 주축이 되어 주 1회 모임을 가진 조인트 팀웍을 마련하였는데, 잘못된 블루스의 방향을 올바르게 잡자는 취지로서 신촌에서 모였다하여 신촌 블루스라고 부른게 그대로 고착화 되었고, 이 운동이 확산 되면서 60년대에 이미 소울 가수로 정평이 난 박인수와 김현식, 이문세도 신촌 블루스와 협연을 가졌고 대중들에게도 크게 어필하였다.



그런 가운데 기폭제 구실을 한 노래가 있었으니, 1986년 한영애가 발표한 건널수 없는 강(이정선 곡)이다.
이 노래는 지금껏 우리가 들어본 블루스현격한 차이가 있는것으로 즉 블루스의 기본요소인 블루노트 스케일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것은 신촌 블루스꾸준한 활동이 3년여 있어온 결과였으며, 1987년 명혜원의 청량리 블루스가 뒤따라 합세하여 마침내 일본풍이 아닌 흑인풍의 정통 블루스가 유행하는 계기가 된다.
이어서 쏟아져 나온 작품 하나의 난 아직도 널, 이선희의 나 항상 그대를, 사랑과 평화의 울고 싶어라, 양수경의 바라볼 수 없는 그대, 신촌 블루그대없는 거리, 루씰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다 영국에서 선술집과 거리밴드를 돌며 컨트리 블루스를 익혀 5년만에 귀국한 내 인생의 김목경과 데뷔 앨범에서 너무 진한 블루스를 불렀다하여
방송부적격으로 묶인 윤명운이 가세해 정통 블루스를 주창했다.
이처럼 블루스가 유행하는 이면에는 트롯류 블루스에서 자주 시도하는게 결코 우연이 아는 것으로서 블루스는 어느 때나 히트한다는 징크스를 확인 시켜주는 결과이기도 하다.
또한 블루스는 한많고 느린 템포를 좋아하는 우리의 정서에 잘 맞아 떨어지는 것으로도 풀이 된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요즘에 블루스라는 용어가 남용되고 있는 감이 없잖아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앞에서 열거한 블루스의 룰을 벗어난 단지 블루스적인 리듬과 냄새만 피운 블루스풍의 노래들이 무절제하게 블루스라는 이름을 갖다 붙이는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이제라도 일본풍의 부르스가 아닌 올바른 개념의 블루스를 인지하고 수용했을때 블루스의 바람은 바람이 아닌 순풍으로 바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