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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음악

Penelope (에게해의 진주) / Paul Mauriat 연주

by 부산 성광 오디오 2014. 6. 24.

Penelope (에게해의 진주) / Paul Mauriat 연주

 

 

 

 

 

 

폴 모리아(Paul Mauriat) 1925.3.4 - 2006.11.3 프랑스

폴 모리아는 1925년 3월 4일 프랑스 남부의 항구도시인 마르세이유에서 4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음악적 기질을 타고난 그의 부친은 전보배달부였지만, 어려서부터 폴 모리아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며, 그의 음악적 소질을 키우기위해 음악공부를 가르킨다.
1935년 가족들이 파리로 이주하게 되면서 파리음악원에서 음악 수업을 받았다. 졸업후 처음에는 우체국일을 보면서 친구들과 조직한 밴드에서 음악을 연주하게 되고 재즈를 주로 들려주는 클럽과 계약을 맺어, 이때부터 인정을 받으며 유럽의 여러 도시를 공연하며 다니게 된다.

영화음악을 하면서부터 인기를 얻기 시작하는데, 샤를르 아즈나브르(Charles Aznavour)를 비롯한 유명한 샹송 가수들이 폴 모리아가 편곡한 곡을 부르게 되며, 1968년 Love is Blue가 대힛트를하게 되면서 그의 악단이 세계적인 악단의 위치에 까지 이르게 된다.

폴 모리아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살려 대규모의 현을 사용하는 한편, 효과적으로 쳄발로를 사용하여 완전히 이색적인 사운드를 창조하여, 새 시대의 무드음악이라는 Easy Listening의 개척자라고도 불리어졌다. 그의 음악세계의 또 하나의 특징은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그 나라의 음악을 자신만의 작곡과 편곡으로 오케스트라와 더불어 수많은 레퍼토리를 소화해내며 사랑을 받아왔다. 그 중 브라질의 음악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아 수차례나 브라질을 방문하였고, 남미 음악을 유럽에 전파하였다. 이러한 결과로 발표된 곡이 유명한 "Penelope(에게해진주)", "El Bimbo(올리브의 목걸이)", "La Reine De Saba(시바의 여왕)"으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1975년 12월 23일 처음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한 후 그 동안 4번이나 내한공연을 가졌고, 우리의음악도 여러곡 편곡하여 발표한 바가 있다. 1997년 프랑스 문화부로부터 `예술문화 훈장'을 받았으며, 1998년 일본공연을 끝으로 무대에서 물러나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

수많은 악단이 있지만 폴 모리아처럼 많은 레파토리와 연주활동은 가진 악단은 거의 없으며, 그의 음악이 있는 한 Easy Listening이라는 무드음악은 항상 우리 기억속에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에게해의 산토리니 섬에서 바라본 진주처럼 푸른 쪽빛 바다>

 

 

 

 Penelope (페네로페)

 

페넬로페는 용모의 아름다움보다는 성격이나 행실의 아름다움으로 유명해진 신화의 영웅적인 여성 가운데 한 사람이다.

페넬로페는 스파르타의 왕 이카리오스의 딸이었다. 이타케 왕 오디세우스 는 많은 경쟁 상대를 물리치고 이 페넬로페를 아내로 삼는 데 성공했다. 신부가 친정을 떠날 날이 가까워 오자 이카리오스는 차마 딸을 떠나 보내기 싫었던 나머지, 남편을 따라 이타케로 가지 말고 자기와 함께 살자고 했다. 오데세우스는 페넬로페에게 그 선택을 맡겨 친정에 머물든 자기와 함께 가든 마음 내키는 대로 하라고 했다. 그러자 페넬로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너울로 얼굴을 가렸다.

이카리오스는 더 이상 강권할 수 없어 딸을 떠나 보내고는 부녀가 이별한 장소에다 기념비를 세우고 이를〈정절의 여신>에게 봉헌했다.

 

(페니로페와 구혼자들>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는 금실좋게 살았지만 결혼한 지 겨우 1년 남짓 지나 이 행복은 끝났다. 트로이아 전쟁이 터져 오디세우스가 소집된 것이다. 오디세우스가 오랜 세월 집을 비운데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돌아올지 안 돌아올지 아무도 모르는 판국이어서 페넬로페는 수많은 구혼자들에게 시달려야 했다. 구혼자들 중 하나를 골라 혼인하지 않고는 도저히 그들 등쌀을 이겨 내기 어려운 입장이었다. 그러나 페넬로페는 오디세우스가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차일피일 구혼자 선택을 미루었다.

구혼자 선택을 미루는 빌미의 하나로, 페넬로페는 시아버지의 수의(壽衣) 짜기를 시작하고는, 그 수의 마련이 끝나면 구혼자들 중 한 사람을 고르겠노라고 했다. 그리고는 낮에는 베를 짜고 밤이 되면 짠 베를 풀었다. 이것이 유명한 〈페넬로페 베짜기〉라는 것인데 이 말은 오늘날 쉴새없이 하는 데도 끝나지 않는 일을 가리킬 때 쓰인다. 

 

<거지의 변장을 풀고 아내 페넬로페와 해후하는 오디세우스.

19세기에 출간된 신화집의 삽화>

 

 Penelope (페네로페)는 그 아름다운 미모와 고운 심성 및 정절을 볼 때 '에게해의 진주'라고 불러도 모자람이 없겠다.

 

페네로페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 :  http://terms.naver.com/entry.nhn?cid=98&docId=1832934&mobile&categoryId=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