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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이야기

탄노이 1

by 부산 성광 오디오 2020. 12. 30.

 

김편 2020. 11. 28. 17:23

 

 

스피커를 고르는 기준은 너무나 많다. 소리부터 따지는 것이 순서이지만 이 역시 개인 취향이 개입되기에 변수가 무한하다. 스펙이 도움은 되지만 실체 청감과는 대부분 거리가 있다. 저마다 시청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첨단 소재와 신기술, 최신 트렌드를 잣대로 삼아봐도, 이것이 내일도 유효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세월의 검증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대략 난감한 상황에서 도움이 되는 기준이 있다. 바로 ‘브랜드’를 보는 것이다. ‘뭐야? 겨우 그거야?’라고 하실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까지 수없이 오디오를 바꿔온 오디오 애호가 입장에서, 그리고 1년에 수백 종의 오디오를 리뷰하는 전업 리뷰어 입장에서 ‘브랜드’는 그나마 신뢰할 수 있는 기준점이었다. 명문가 제품은 최소한 기본은 했다.

 

탄노이와 핑크 플로이드

 

이러한 스피커 명가를 꼽을 때 빠질 수 없는 브랜드가 있다. 바로 영국 탄노이(Tannoy)이다. 1926년에 설립된 탄노이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윈스턴 처칠이 대중연설을 할 때 사용한 스피커로 유명하다. 탄노이는 또한 옥스포드 영어사전에 ‘PA 음향 시스템이나 음성 및 음악을 전달하는 스피커 장치’라고 등재된 보통명사이기도 하다. 이 정도는 돼야 ‘명가’다.

 

하지만 최소한 필자에게 있어서 탄노이는 핑크 플로이드의 ‘Dark Side of the Moon’을 녹음할 때 쓴 스피커로 각인된다. 1972년에 녹음된 명반 중의 명반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앨범을 오디오 리뷰 때마다 테스트용으로 듣기 때문에 탄노이는 더욱 살갑고 뜨겁게 다가온다. 영국 런던 애비로드 스튜디오에서 이 앨범을 녹음하며 모니터로 썼던 스피커는 탄노이의 랭카스터(Lancaster)였다.

 

탄노이와 듀얼 콘센트릭

수많은 명반을 내놓았던 EMI 애비로드 스튜디오는 왜 탄노이를 모니터 스피커로 썼을까. 이 이야기는 1947년에 탄노이가 내놓은 위대한 발명품 ‘듀얼 콘센트릭’(Dual Concentric) 유닛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고음역대와 중저역대 유닛을 하나로 포갠 이 듀얼 콘센트릭 유닛을 통해 오디오 재생은 그 품격이 수직 상승했다. 지금도 듀얼 콘센트릭이 채용된 탄노이 스피커를 듣다보면 그 풍성하면서도 정교한 소리에 깜짝 놀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캔터베리GR의 듀얼 콘센트릭 유닛

 

듀얼 콘센트릭은 말 그대로 2개의 중심축이 겹친다는 뜻이다. 중저음을 내는 미드우퍼 가운데에 고음을 내는 트위터를 박아넣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탄노이 듀얼 콘센트릭은 다른 점이 2가지가 더 있다. 트위터 입장에서 원추형 모양의 미드우퍼 진동판을 혼(horn)으로 이용한다는 것, 그리고 트위터 설계 자체가 컴프레션 드라이버(compression driver) 구조로 돼 있다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로얄 GR 듀얼 콘센트릭의 트위터부. 구멍이 송송 뚫린 페퍼포트가 웨이브 가이드 역할을 한다. 구멍 뚫린 모양이 후추통(Pepper Pot)을 닮았다고 해서 페퍼포트 웨이브가이드다.

컴프레션 드라이버? 맞다. 진공관 앰프 출력이 형편없었던 오디오 초창기, 스피커는 무조건 감도가 높아야 했다. 이를 위해 탄생한 것이 일종의 나팔 모양 확성기인 혼이었고, 혼 안에 장착된 중고역 유닛이 컴프레션 드라이버였다. 1) 진동판이 움직여 낸 소리를, 2) 좁은 출구를 통해 빠져나가게 함으로써, 3) 음에 에너지를 얹힌다는 원리다. 구멍이 작을수록, 압력이 높을수록 세차게 그리고 멀리 나가는 물총을 떠올리면 된다.

 

따라서 달리 생각하면, 듀얼 콘센트릭은 ‘컴프레션 드라이버+혼’을 고음역 전문 유닛으로 특화하고, 혼을 중저음 전문 유닛의 진동판으로 활용한 설계다. 여기에 각 유닛이 동일 지점에서 소리를 내기 때문에 각 대역의 위상과 시간축이 흔들릴 위험이 애초에 없다. 어렵게 생각할 게 없다. 사람의 성대와 구강구조, 입 모양은 처음부터 동축이자 혼이며 컴프레션 드라이버였던 것이다.

 

탄노이의 듀얼 콘센트릭은 1947년 엔지니어 로니 래컴(Ronnie H. Rackham)이 개발했으며 이후 화려한 ‘모니터 블랙-실버-레드-골드’의 시대를 연다. 1974년 미국 기업 하만 인터내셔널(Harman International) 산하 시절에는 HPD(High Performance Dual)와 HPD MKII 유닛을 선보였고, 1978년 다시 주식전량 매입 방법으로 영국 브랜드가 된 후에는 프레스티지 듀얼 콘센트릭(Prestige DC) 유닛으로 변신했다. 프레스티지 DC 역시 ‘TW-HE-SE’를 거쳐 현재 4세대 GR 유닛이 현역으로 활약중이다.

 

듀얼 콘센트릭 유닛 구분 방법

 

듀얼 콘센트릭 유닛은 크게 3가지 방법으로 구분된다.

 

1) 우선 미드우퍼 진동판의 직경에 따라 15인치, 12인치, 10인치 모델로 나뉜다.

‘브리티시 사운드의 마에스트로’ 오토그래프(Autograph. 1953)가 15인치, ‘거실의 실내악단’ 캔터베리(Canterbury)가 12인치, ‘밀폐형 포인트 소스의 귀재’ IIILZ(1961년)가 10인치다. 현재 탄노이 프레스티지 라인업에서는 웨스트민스터 로얄 GR과 캔터베리 GR이 15인치, GFR GR이 12인치, 켄싱턴 GR과 턴베리 GR, 스털링 GR이 10인치다. 레거시 라인업에서는 아덴이 15인치, 체비엇이 12인치, 이튼이 10인치다.

 

2) 두번째 방법은 자석이 알니코(Alnico)인지 페라이트(Ferrite)인지 살펴보는 것이다.

자석은 보이스코일과 스파이더와 함께 스피커 유닛의 모터 시스템을 이루는 핵심이기 때문에 음색과 성능의 큰 변수가 된다. 초창기 탄노이와 듀얼 콘센트릭 유닛은 1977년까지 알니코 자석을 썼고, 1978년부터는 페라이트, 1988년부터는 알니코 자석의 일종인 알코맥스 III(Alcomax III)와 페라이트를 모델에 따라 나눠 쓰고 있다. 현재 레거시 라인업 전 모델과 프레스티지 라인의 턴베리 GR과 스털링 GR이 페라이트, 나머지 모델은 알코맥스 III를 쓴다.

레거시 아덴에 투입된 듀얼 콘센트릭 유닛. 트위터부가 다이내믹 드라이버이며, 앞에 튤립 모양의 웨이브가이드가 붙어있다.

3) 마지막 방법은 유닛 가운데에 박힌 고음역부 설계 방식이다.

진동판 재질은 모두 알루미늄-마그네슙 합금이지만, 방사 형태에 따라 컴프레션 드라이버와 일반 다이내믹 드라이버로 나뉜다. 컴프레션 드라이버는 진동판이 일으킨 음파가 작은 지름의 출구를 통해 빠져나가고, 다이내믹 드라이버는 동일 직경의 출구를 통해 빠져나간다. 말 그대로 ‘압축’의 여부다. 또한 컴프레션 드라이버는 진동판의 볼록한 면이 후면을 향하고, 다이내믹 드라이버는 정면을 향한다. 현재 라인업 중에서는 턴베리 GR과 스털링 GR, 레거시 3모델이 다이내믹 드라이버, 나머지 모델들이 컴프레션 드라이버를 채택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 이 글은 2020년 11월 오디오플랫폼 웹진에 실린 제 졸고입니다.